이론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스크린의 추방자들』, Chapter 1

eunchae_cho 2018. 7. 12. 13:00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스크린의 추방자들』

「자유 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각주:1]




. 선형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의 몰락



한스 프레데만 드 프리스(Hans Vredeman de Vires), 「원근법 연구 39(Perspective 39)」, 1605.


 슈타이얼은 근대의 지배적 시각 패러다임이었던 선형 원근법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수평선에 모든 점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때의 수평선은 지표면의 만곡이 무시된, 편평하고 정적인 선을 뜻한다. 슈타이얼은 이 수평선이 안정성이라는 허상을 창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두 번째는 선형 원근법이 고정된 하나의 눈을 규범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선형 원근법상에서 이 눈은 관찰자의 눈을 의미하며,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눈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자연스러우며 과학적이라고 단정된다. 정지해 있는 수평선, 그리고 관찰자에 기반을 둔 선형 원근법이 구축하는 공간은 수학적이고 균질적이기 때문에 계산, 운행, 예측이 가능하다. 슈타이얼에 따르면, 선형 원근법은 이를 바탕으로 선형적인 시간 개념을 도입해왔다. 하지만 슈타이얼은 우첼로(Paolo Uccello)의 회화[각주:2]의 예를들어, 선형 원근법에 의해 재발명된 주체와 시공간이 서구 및 서구적 관념의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각주:3]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증기속도대서부 철도」, 1844


 19세기에 들어서 다른 종류의 시각 유형이 보충되기 시작했고, 선형 원근법의 시각 체계로서의 지배력은 서서히 약해진다. 슈타이얼은 이 전환이 19세기 회화 분야에서 이미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슈타이얼이 예시로 드는 것은 윌리엄 터너(J. M. W. Turner)노예선(The Slave Ship)(1840), 증기, 속도대서부 철도(Rain, Steam and Speed: The Great Western Railway)(1844)이다. 이 두 작품에서 선형 원근법은 배경으로 녹아들며, 수평선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린다. 관찰자(viewer) 역시 안정적 위치를 상실한 채로, “공기 중에 흔들리는 듯하다.”(27)






. 수직 원근법(vertical perspective)


슈타이얼에 따르면, 우리의 시공간적 방향감각은 근래에 들어 극적으로 변화한다.[각주:4] 항공술의 발달로 조감도, 구글맵, 위성사진과 같은 공중에서 내려다본 군사 및 엔터테인먼트 이미지들이 포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감(鳥瞰)의 시선으로 대표되는 수직 원근법은 모의 지표면(simulated ground)을 보여주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평선이 사라진 이후의 방향 파악의 도구로 채택된다. 그러나 슈타이얼은 수직 원근법은 선형 원근법이 내포하고 있었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수직 원근법 역시 우월한 지위의 관람자를 위한 개관과 감시의 관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슈타이얼은 신기술의 발달로,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이 일방적인 시선이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그리고 전능한 것으로 유포된다고 말한다.





. 자유낙하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실험


 슈타이얼은 글의 서두에서 바닥(ground)이 없는 낙하를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슈타이얼에 따르면, 동시대에는 어떠한 안정적 근본(ground 혹은 토대), 그리고 어떠한 바닥(ground)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체와 객체는 항구적으로 낙하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낙하는 상관적(relational)[각주:5]이기 때문에, 우리는 낙하를 인식하지 못하며, 그저 부유하고 있는(floating) 것으로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 바닥을 위에서 우월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슈타이얼은 우리가 자유낙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자유낙하에서 비롯되는 방향감각 상실(disorientation 혹은 혼미)을 아도르노(Theodor W. Adorno)현기증개념에 빗대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현기증은 근본의 상실에 따른 공황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희망 없이 자신을 던져서 얻어낼 수 있는 진리의 지표이다. 슈타이얼에게 낙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낙하는 무너지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제자리로 맞아 떨어지는 새로운 확실성 또한 의미”(39)하기 때문이다. 결국, 슈타이얼의 사고 실험은 우리에게 더는 절대적인 근본(ground)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를 인정했을 때 열리는시각성의 새 지평을 역설하고자 한다.



  1. 본 발제문은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18.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실험」(pp.15-39.) [본문으로]
  2. 파울로 우첼로(Paolo Uccello), <훼손된 성체의 기적(Miracles of the Desecrated Host)>, 1465-69. [본문으로]
  3. <훼손된 성체의 기적>에서 성체를 훼손하려고 했던 유대 상인은 화형당할 위기에 처하고, 가족과 함께 기둥에 묶인다. 슈타이얼은 그림 속에서 모든 선들이 일제히 기둥으로 집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육면화가 1492년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에 조금 앞서 제작되었다고 밝힌다. “(육면화의) 각 패널에서 선형 원근법이 전제하는 과학적 세계관은 누군가를 타자로 표시하기 위한 규준을 마련하는데 일조했으며, 따라서 타자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한다.”(pp.22-23.) [본문으로]
  4. 앞 글, p. 28. [본문으로]
  5. 슈타이얼이 말하는 ’자유 낙하’의 핵심은 “모든” 주체와 객체에 “동등하게 항구적으로” 진행되는 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