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스크린의 추방자들』, Chapter 2

eunchae_cho 2018. 7. 12. 13:28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스크린의 추방자들』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각주:1]



Ⅰ.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


우디 앨런(Woody Allen), 「해리 해체하기(Deconstructing Harry), 1977.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으로 선예도(sharpness)와 해상도(resolution)가 떨어진다는 점을 꼽는다. 슈타이얼은 주인공 한 명에게만 초점이 맞지 않는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각주:2], 그리고 영화관[각주:3]의 예를 들며, 선예도와 해상도, 즉 화질이 이미지에 일종의 계급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 빈곤한 이미지는 이미지의 동시대적 위계에서 동시대 스크린의 추방된 존재”(42)인 것이다.

하지만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의 속성으로 저화질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가 업로드되고, 다운로드되며, 재포맷되고, 재편집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빈곤한 이미지는 자신의 물질성과 맞바꾼 디지털의 불확정성으로뛰어들며, 폭력적인 변위(dislocation), 전송(transferal), 장소상실(displacement)”의 흔적을 품게 된다. 결국, 빈곤한 이미지는 시청각적 자본주의하에서 악순환하는 이미지의 가속과 유통을 증명”(42)하면서, 완성된 이미지로 존재하기보다는 생성 중인이미지가 된다.




Ⅱ. (빈곤한 이미지로) 부활하기


 슈타이얼은 2,30년 전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됨에 따라, 실험 영화 혹은 에세이 영화(Essay film)[각주:4]와 같은 비상업적인 이미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상품으로서의 문화 개념을 내세웠기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자연스럽게 주변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상업적인(그리고 대체로 저항적인) 시각물들은 지하 혹은 대안적인 아카이브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상을 온라인으로 재생할 수 있게 되면서, 제반의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취를 감추었던 비상업적인 이미지들이 우부웹(Ubuweb)이나 유튜브(YouTube)와 같은 플랫폼들 통해서 점차 부활(resurrection)”[각주:5]한 것이다.동시에 슈타이얼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빈곤한 이미지의 편집가능성에 주목한다. 단순히 다운로드되는 것을 넘어서, 온갖 종류의 변이를 가미할 수 있기 때문에, 빈곤한 이미지는 너무도 쉽게 사유화(privatization)될 수 있었다. 사유화가 만연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미지에 대한 불법복제(piracy)와 도용(appropriation)이 발생한다. 그리고 슈타이얼은 이를 가리켜 빈곤한 이미지의 유포(circulation)라고 정의 내린다.





Ⅲ. 불완전 영화(Imperfect Cinema)


슈타이얼은 제3 영화의 한 사례였던, 1960년대 쿠바의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사(Julio Garcia Espinosa)의 불완전 영화(imperfect cinema) 와 빈곤한 이미지 사이를 연결 짓는다. 슈타이얼은 불완전 영화와 빈곤한 이미지 모두 작가와 관객의 구별을 감소시키고 삶과 예술을 융합한다. 무엇보다도 불완전 영화의 시각성은 대놓고 불순하다”(52)한다고 이야기한다. 슈타이얼은 사회의 계급을 극복하고자 했던 불완전 영화의 목적이 빈곤한 이미지를 통해 현재에성취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빈곤한 이미지의 바탕이 된 디지털 네크워크로 인해, 목표 달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용이해졌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슈타이얼은 이제 해상도와 교환가치만으로 이미지를 정의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는 속도와 강도(intensity), 그리고 확산(spread)을 이미지를 정의하는 새로운 규준으로 제시한다. 슈타이얼은 물질(matter)을 잃고 속도를 얻은”(54) 빈곤한 이미지가 동시대의 탈물질화(dematerialization)와 맥을 함께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념미술은 예술 오브제에 대한 비물질화를 신조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슈타이얼은 개념미술의 비물질화된 예술 오브제가 자본주의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면서, 결국 개념미술이 자본주의 안으로 포섭되었다고 주장한다.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 역시 유사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Ⅳ. 시각적 유대(visual bond)


슈타이얼은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가 말한 시각적 유대(visual bond)”에 대해 언급하며, 빈곤한 이미지가 정보 자본주의에 온전히 녹아들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베르토프가 말하는 시각적 유대란, “세계의 노동자를 연결하는 고리(link)”,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유흥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그 관람자들을 조직(organize)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앞서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의 유포와 생성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사용자(user)에 주목한 바 있다. 이처럼 빈곤한 이미지의 편집자, 비평가, 그리고 (공동) 저자된 수많은 사용자 사이에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링크가 발생하게 된다. 빈곤한 이미지는 이 링크를 통해 베르토프의 시각적 유대와 같은 역사적 관념을 다시 현실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시각적 유대는 빈곤한 이미지, “현재로 연결된 바로 이 링크이며, 빈곤한 이미지는 결국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1. 본 발제문은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18.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pp.41-60.) [본문으로]
  2. Woody Allen, Deconstructing Harry, 1977. 이 영화에서 앨런은 주인공 한 명에게만 초점이 맞지 않도록 만든다. 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부족한 선명도(definition)은 앨런이 이러한 연출을 선택한 것은 주인공이 걸린 병 때문이다. 그 캐릭터의 직업은 배우이기 때문에, 그의 부족한 선명도(definition)은 그가 직업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물질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초점(focus)은 사회적 계급 및 지위나 가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43쪽) [본문으로]
  3. “(영화관과 같은) 공식 판매점에서는 쾌적한 환경하에 고급 제품이 판매된다. 같은 이미지의 저렴한 파생 제품들이 DVD, TV 방송, 온라인을 통해 빈곤한 이미지가 되어 유통된다.” (45쪽) [본문으로]
  4. 에세이 영화란, 영화의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 영역에서 독자적인 미학과 방법론을 모색한다. 예술가로서의 성찰과 사유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직접 촬영한 실사 영사이나 극 영화의 푸티지, 혹은 각종 자료화면을 이용하기도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Essay (2017년 5월 10일 접속) [본문으로]
  5. 슈타이얼은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라는 에세이 영화 감독을 예시로 들어 이 부활을 부연 설명한다. 슈타이얼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누구든 원하기만 한다면 마르케의 잊혀진 명작들을 토렌트(torrent)에서 다운받아 홀로 회고전을 열 수 있을 정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