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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민 개인전 ^^. 전시 서문

eunchae_cho 2020. 12. 1. 13:46

윤정민 작가의 개인전 ^^. (2020.11.26-12.13) 서문을 썼습니다.

전시 제목: ^^.

전시 기간: 2020.11.26-12.13

전시 장소: 고양문화재단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더해가기가 아닌 덜어내기

윤정민 개인전 ^^. (2020.11.26-12.13, 갤러리누리)

그중에 하나

 윤정민이 만들어낸 인물 ‘조각’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빠 보인다. 운동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설거지를 하거나 물을 따르지만, 전부 일상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얼굴은 생김새를 표현했다기보다는 그저 표정을 그려 넣은 것 같고, 머리카락이나 옷처럼 각각을 구분할 만한 특징적인 요소도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의 다양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가도, 또 여러 인물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 사이를 돌다 보면 몇몇 작업과는 문득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이들은 관객을 의식하고 자세를 취하고 있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그들 중의 하나가 되어 서로의 일상을 구경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녹슨(슬) 채로 서 있는 드로잉

 윤정민의 작업은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일상적인 순간들을 드로잉으로 남기고, 그중 몇을 입체로 구현해서 공간 안으로 소환한다. 철을 용접하여 드로잉 선을 따라 뼈대를 잡고, 그 위를 한지와 석고로 덮는다. 작가는 좌대 위에 올라선 자신의 인물들을 ‘조각’으로 호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완성된 형태는 어딘가 조각보다는 드로잉을 떠올리게 한다. 조각들은 분명 공간 속에서 부피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두터운 양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종이 위의 드로잉이 그 모습과 느낌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 공간으로 출력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드로잉은 조각을 위한 단순한 아이디어 스케치가 아니었고, 드로잉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평면성마저도 조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입체인 동시에 평면적인 군상들은 마치 공간을 바탕으로 삼아 그려진 드로잉처럼 보인다.

 

 이 작업들은 꽤 튼튼한 뼈대를 지니고 있지만, 막상 표현된 인물들은 뼈가 없는 사람처럼 물렁해 보인다. 딱히 마디가 구분되지 않은 몸에는 흐늘거리는 율동감이 있다. 방향을 조금만 틀면 얇디얇은 옆면이 보이는데, 이 가느다란 두께는 작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평면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능하게 한다. 부피에 비해 희미한 중량감은 이 군상들에게 가벼운 활기를 부여하고 있다. 종이 위의 그림이 뒷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이, 그의 조각 역시 뒷면은 아무런 특징 없이 텅 비어 있다. 오직 정면을 위해 존재하는, 드로잉이라기엔 입체적이고 조각이라기에는 평면적인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둥그런 몸은 그것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뼈를 도리어 연상하게 하듯 하얗다. 하지만 이내 몇몇 조각의 몸에서 얼룩 같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노르스름한 자국은 작가가 드로잉에서 자주 사용하곤 했던 색채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작품에 녹이 슬면서 우연히 생겨났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의 흐름을 무늬로 새긴 조각들.

이후의 일상

 윤정민은 “모두가 경험했을 법한 모습”, 즉 일상을 조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꽤 보편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지만, 투병 이후로 삶의 전환점을 맞은 작가에게 ‘일상’은 그 의미가 조금 남다를 것이다. 투병은 다소 개념적인 작업을 해오던 작가가 일상으로 시선을 돌린 계기이자, 익숙하지는 않지만 좋아해왔던 드로잉을 다시 시작한 동기이기도 하고, 한지와 석고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하지만 작가가 그 이후로 작품 안에서 욕심을 덜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윤정민의 드로잉-조각 역시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요소를 자꾸만 덧붙이고, 대단한 의미를 가장하는, 일련의 더해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로 그런 것들을 덜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그럴듯한 무언가를 꾸며내는 대신, 주변의 일상을 스스로 가장 편하고 솔직한 방식으로 조각하고 그려내려고 한다. 덜어내고 덜어내서 발음할 수 있는 음절마저 사라진 전시의 제목처럼 다만 즐거운 마음으로.

조은채(미술 비평)